Decision To Leave (2022)
박찬욱 감독의 2022년 신작이면서 여러 번 관람하는 영화로 화제를 모았던 <헤어질 결심>의 줄거리와 감상평을 남겨보겠습니다.
영화 줄거리
범죄가 의심되는 용의자 송서래(배우 탕웨이)를 수사하는 경찰 장해준(배우 박해일)이 서래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용의자를 취조해야 하는데 마치 사랑을 속삭이는 것 같고, 비싼 초밥을 서래에게 대접하는 해준은 의심해야 할 용의자를 다정하게 대하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전반부가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의 관심으로 끝이 났다면 영화 후반부의 온도는 사뭇 다른데요
해준이 안개가 가득한 해안가 이포로 이사를 하고 서래와 해준이 다시 용의자와 형사로 만나게 되면서 후반부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해준이 서래에게 고급 초밥을 주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후반부에서는 핫도그를 가져주는 장면이 나오면서 해준의 내면적인 갈등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핫도그의 의미는 당신을 의심한다. 이제 너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합니다. 이어서 해준은 서래에게 왜 그 남자와 결혼했냐는 질문을 하고 서래는 다른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다시 말해 해준이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는 거죠.
후반부의 해준은 서래를 의심과 질책으로 수사를 진행해 가지만 둘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영화의 끝으로 가면서 서래의 모든 행동이 해준과의 관계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래가 죽음으로써 서래와 관련된 사건은 미지의 사건으로 남게 되죠. 해준은 뒤늦게서야 서래를 찾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영화는 끝이 납니다. 미지의 사건으로 남는다는 것은 사진으로나마 해준에게 기억되고 싶은 서래의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들의 슬픈 사랑에 먹먹한 감정이 일렁입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두 남녀가 만나 사랑하게 되는데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할 것을 직감해 헤어질 결심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둘의 사랑이 완전한 사랑도 아니고 완전한 헤어짐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해석 및 관전포인트
안 개
헤어질 결심의 주요 키워드는 ’안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을 영국 런던에서 드라마<리틀 드러머걸, The Little Drummer Girl>를 제작할 때 구상했는데요 당시 한국이 그리워서 한국 옛날 가요인 정훈희의 안개라는 노래를 듣다가 안개가 배경이 되는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흐린 날씨와 안개로 유명한 영국에서 평소 좋아하던 안개라는 노래를 들으며 안개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로까지 이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서 더욱 특별하고 낭만적인 요소로 다가옵니다.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서래의 감정들과 현실과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해준의 모습. 서로의 마음과 진심을 알지 못하는 불안한 불륜 관계를 ‘안개‘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신 발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신발의 의미는 참 중요합니다. 그의 영화는 항상 속죄, 금기, 구원을 키워드로 하는데요 구두는 사랑이나 욕망에 의한 금기의 관계에서 나타나고 운동화는 금기를 범하지 않은 순수한 관계와 연결이 됩니다.
헤어질 결심에서도 마찬가지로 구두와 운동화가 등장합니다.
경찰인 해준의 품위는 구두처럼 생긴 운동화로 드러나고 끈이 잘 묶인 운동화로 그의 곧은 품위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경찰인 그와 용의자인 서래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의 운동화 끈이 풀려있는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해준이 경찰로서 품위가 붕괴된 순간을 담아낸 거죠. 불륜이라는 금기된 사랑에 빠져 있는 해준의 상황이 구두로 나타나고 서래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경찰로 되돌아가면서 금기와 붕괴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해준의 변화가 다시 운동화로 나타납니다.
영화의 끝부분에 가서야 서래는 무너지는 모래 산처럼 자신의 사랑으로 붕괴했던 해준을 경찰로서 회복시키며 구원한다는 내용을 담아내는데요 이런 상징적인 의미가 결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서래의 속죄이자 사랑을 의미하는 바다에서 해준은 풀려있던 운동화 끈을 묶습니다. 결국 해준이 범인을 쫓아갈 수 있는 운동화를 신는 것과 제대로 달리기 위해서 운동화 끈을 묶는 행위는 품위 있는 경찰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구두를 신는 것으로 붕괴했던 해준이 결말에서 운동화 끈을 매는 것으로 해준의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산과 바다
영화는 산에서 시작해서 바다로 끝이 나는데요
해준은 서래의 남편이 죽은 높은 산을 직접 올라가 사건을 수사하면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둘은 산에서 내려와 사찰에서 마음을 확인하게 되죠. 속을 알 수 없는 북을 사이에 두고 밀회를 즐기는 서래와 해준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40대 중년의 멋짐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요.
헤어질 결심은 처음부터 배우를 결정한 후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탕웨이와 박해일을 염두에 두고 써 내려간 각출인데요 두 배우의 영향력이 이야기로 가득 채워진 작품으로 독특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산과 바다가 다른 무언가를 상징하기보다 하나의 세계를 뜻한다”라고 말했는데요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서 산과 바다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서래의 옷이나 서래의 집에서도 청록색이 자주 보입니다. 청록색은 산의 녹색과 바다의 파란색을 섞은 색으로 모호함을 나타내는 색입니다. 그들의 상황과 감정을 색깔로 연출하는 감독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자는 산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인자한 사람이 아닙니다.”
서래가 해준에게 공자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도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헤어질 결심을 하는 서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요. 어쩌면 안타까운 서래의 삶을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총 평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질 때는 다른 점에 끌리기도 하지만 서로 공통되는 부분에 끌리게 됩니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해준의 부족한 잠과 서래에게 부족한 식사를 함께하는 장면을 담아내는데요 해준이 서래의 결핍을 채워 자신의 품위를 지켜줬듯 서래도 해준의 결핍을 채워 해준의 품위를 지켜주려 합니다. 영화는 서로에 대한 오랜 관찰로 서로의 결핍을 인지하고 채워주는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면에서 성숙하고 애틋한 사랑을 다룬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 영화의 특성상 숨겨진 메세지와 결말의 해석까지 찾아봐야 깊게 이해할 수 있기에 단순하게 볼 영화는 아니라고 봅니다. 결말과 해석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요 보면 볼수록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되고 주인공들의 혼란스러운 감정에 몰입하다 보니 많은 여운이 남는 것 같습니다.
<헤어질 결심>은 청룡영화제에서는 무려 6개의 상(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음악상, 각본상)을 수상받았고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촬영한 영화가 칸 영화제에 자주 등장하면서 칸느 박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는데요 그동안 칸에서 수상을 한 영화로는 <올드보이>와 <박쥐> 그리고 <아가씨>가 있고 <헤어질 결심>이 네 번째 작품이 되겠네요.
최근 아카데미시상식의 전초전으로 불리는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헤어질 결심>이 비영어 영화상 부문 후보로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죠. 얼마 남지 않은 아카데미시상식에서도 수상하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기대하는 바가 큰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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